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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조안하라 / 삼천리 (차미례 역)



렸을 적 문예운동에 대한 막연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빅토르 하라를 알았다. 칠레의 전설적인 가수,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칠레 민중운동의 최전선에서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인물.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의 결말에서 처럼 반혁명 세력의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우리는 승리하리라(venceremos)'를 당당하게 부르던 빅토르 하라.


이 책을 반쯤 읽었다가 덮었던 것이 지난 해 말 쯤일 것이다. 아마 무언가 나를 압박하는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책을 주섬주섬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인생의 새로운 라운드에 돌입할 것을 결의하면서 헤이해진 마음을 추스리기로 하고, 적어도 1주일에 책 한권을 독파하자고 마음 먹고 제일 처음 집어든 책이 바로 '빅토르 하라-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다.


이 책은 빅토르 하라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아내이자 동지인 조안하라가 썼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빅토르 하라에 대한 영상들이 그저 껍데기 뿐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했고, 그의 마음은 항상 자신의 뿌리와 더불어 낮은 곳으로 일관되게 향하고 있었다. 그는 예술가였지만, 진정한 예술이 그렇듯 그가 살아온 시대적인 상황에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의 조국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결국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빅토르 하라가 살았던 칠레의 정치적 상황이 소름끼치도록 우리의 상황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와 군부로 상징되던 파시스트 정권의 통치. 그 안에서 억압받고 착취받는 민중들의 삶. 그리고 저항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시도된 수많은 문화 운동들. 비록 약 10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있지만, 그들의 삶과 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모순들이 너무나도 우리와 닮았다는 것, 그리고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따르듯 우리 민중들의 역동적인 투쟁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빅토르 하라라는 인물이 내게 웅변했던 것은 바로 한없는 사랑과 이를 통해 발현된 열정과 낙관성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자신의 조국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곧 그가 열정적인 창작 활동과 치열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며, 또한 숱한 난관과 심지어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시종일관 낙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힘의 원천이었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해가면서 머리는 커지지만, 민중을 위해 일한다는 말은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점점 하기가 부끄러워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반추되는 대목이다. 


이 책에 나온 문화일꾼들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이 특정한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민중들의 삶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그 주인이 바로 민중이라는 것, 그래야 진정한 문화이자 예술이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인민연합이 들었던 구호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아마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구호가 아닐까.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지금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을 향한 초심 그 자체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오직 단결된 힘 뿐이며, 현장과 민중들은 단결된 운동을 원한다. 하지만 소위 똑똑한 사람들, 민중을 조직하고 단결시키겠다는 사람들이 우리의 운동을 갈라놓고 현장을 갈라놓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비록 피노체트의 쿠테타로 인해 좌절되긴 했지만, 아옌데와 인민연합 정부의 사회 개혁과정과 그 속에서 보인 수 많은 사람들의 열정적 활동 모습은, 그간 패배와 관성 혹은 점점 식어가는 내 안의 열정을 깨우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모습들이 현재도 지구 반대편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본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고, 그 가능한 세상을 위해 또다시 꿈을 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