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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도루코 칼 이야기.


어렸을적에 어머니로부터 쌍둥이칼이라는 놈이 제일 명품 칼 중의 명품 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헨켈이라는 제품의 이 칼은 세계적인 명성 못지 않은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과도 한자루에 약 10만원, 식도 한자루에 15-20만원을 호가한다.

난 요리를 좋아한다.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툭닥툭닥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러저러한 식도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데, 나 같은 서민들에게 '헨켈'의 명품 칼은 사실 그림의 떡이다. 그 빛나는 광채와 무언가를 썰때 느끼는 그 예리함과 손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출근을 위한 중고 자가용의 기름 넣기도 빠듯한 형편에서, 보일러비, 관리비, 전월세비의 압박에 시달려 살아가는 사람에게 칼 한자루 가표격에 '0'이 5개 이상 붙어 있는 칼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도루코.
난 도루코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회사가 우리나라 회사라는 사실을 몰랐다. 홍주식이라는 우리나라 사장이 자기 장인의 사업을 물려 받은 기업인지 어찌 알았겠는가. 이름만 들어도 무슨 일본에서 건너온 칼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다만 요리인들의 로망 '헨켈'명품 칼을 구입하지 못하는 나 같은 서민들에게 도루코 칼은 아더왕의 '엑스칼리버' 부럽지 않은 명 칼이었다. 몇천원대에서 만원 조금 더 주면 좋은 칼을 손에 쥘 수 있으니, 무엇이든 썰고 말겠다는 요리 본능을 충분히 불러 일으키는 칼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자부심.
도루코 칼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만든 칼,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와 매출이 1,000억이 넘고, 100여개 국에 수출을 하는 그 자랑스런 이름이 바로 도루코 였다. 그러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땀흘려 일했던 노동자들은 자기 칼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잔업과 철야를 밥먹듯 하면서도, 칼에 손이 비어 인대가 베어 나가는 고통속에서도 그 자부심을 지키며 회사를 위해 헌신했던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명기 '도루코'가 존재했던 것이다.



거리로.
그런 도루코의 노동자들이 지금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칼을 등에 메고,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었듯이 그렇게 하루하루 힘겨운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부심속에 명품 칼을 만들어내던 이들의 육체와 정신에 누가 기스라도 낸 것인가? 엄청난 매출을 올리며, 중소기업의 신화로 자리매김한 도루코에 대체 이 무슨 불량터지는 소리냔 말이다!


진실.
그들이 기계를 돌리며 열심히 만들어 내는 대신,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예수의 십자가와도 같은 그 칼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단체교섭 쟁취!', '체불임금지급!','해고자 원직복직!'. 매출 천억을 뛰어넘은 신화, 세계 100여개국에 면도날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경영의 교과서로 불려지는 경영신화의 진실이 여기에 있었다.

신화의 그늘에는 바로 사내 하도급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도급단가를 마음대로 후려쳐도 아무말 못하고 일했던 그 노동자들이 있었다. 마치 영화 '파업전야'의 한 장면을 보듯, 80년대 후반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역사에서나 볼듯한 구호들이 지금도 유효하게 울려퍼지고 있는 곳이 바로 중소기업 경영신화의 도루코다. 

도루코 노동자들은 지난 2007년 말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선진국의 초중생들이 노동조합의 사회적  순기능과 모의 단체교섭등을 배울때, 노동조합은 게으른 노동자들, 폭도들의 모임정도로 인식하게끔 만들어져있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중에서도 가장 천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역시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상상이상의 탄압과 좌절감이었다. 식구니, 가족이니 떠들어 대던 원청 '도루코'는 노동조합을 만든이후 부터 소위 '바지 사장'들을 앞세워 원격조정을 하며, 조합원들을 쌩까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통해 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체불임금 포기각서를 종용하고, 급기야 조합 간부 9명을 해고했다. 농성에는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조합원들에 대해 업무 방해를 이유로 급여 통장에 그 무섭다는 손배가압류를 걸어놓고, 경찰과 시청을 통해 각종 고소고발, 천막철거, 농성탑 철거 등 갖은 탄압을 일삼고 있다. 

중노위에서도 5억 5천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꿈쩍하지 않고 있고, 부당해고 판결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는 곳이 바로 악덕 도루코 신화의 진실이다.



도루코 비정규직 지회 동지들은 참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처음 40여명에 육박하던 조합원들이 회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손가락에 꼽을 만치의 숫자로 줄어들었다. 사측은 철저히 법적대응으로만 상황을 끌고 가고 있다. 당연히 우리 사회에 법이란 것이 있는 놈 편에서는 유리하지만, 없는 자들, 특히 노동자들의 편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세상아닌가!

가진 놈들은 몇 천억을 해쳐 먹어도 '휠체어' 하나 타고 '마스크'만 얼굴에 두르면 금방 나오지만,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몇 십억의 손배가압류를 물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 이 지랄같은 사회의 법이 아닌가.



도루코 칼을 내려놓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일 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계급적 의식의 가장 소극적 표현으로서 난 몇가지 실천을 한다. 적어도 악덕 자본이 생산하는 제품은 쓰지 않는 것. 무노조 경영과 고도의 노동탄압을 자랑하는 삼성제품, GS칼텍스 기름, 배달호 열사를 떠올리게 하는 두산소주, 이랜드 계열의 제품들......이제 도루코의 칼도 내려놔야 겠다는 생각이다.

서걱서걱 음식을 썰며 즐거움을 만들어주던 칼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리고 당장에 그만한 질의 칼을 또 돈을 들여 사야 하는 번거로움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썩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그래도 내려놓아야 한다. 저 악덕 자본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한 말이다. 가진자의 편에서있는 법에서도 인정하는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를 진정 빼앗겠다면, 체불임금과 복직, 노동조합에 대한 천박한 의식속의 탄압이 중단하지 않는한 말이다.


도루코 비정규직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투쟁을 위한 연대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때가되면 그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난 오늘 새 칼을 사러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