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의 슬럼프.
學을 떠나 최근 나의 삶과 활동을 돌아볼 시점이다. 정신없이 흘렀던 1년, 그리고 정신적, 사상적 방황과 투정의 1년.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난 지금 오랜 슬럼프를 걷고 있다. 감정과 육체가 극하게 치우치는 슬럼프가 아니라 완만하지만 스스로 사상과 실천의 답을 찾지 못했던 슬럼프다. 차라리 극하게 치우쳐지는 슬럼프라면 한번 심하게 앓고 나면 될 것을, 이 완만한 경사의 슬럼프가 나를 괴롭힌지도 꽤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슬럼프를 벗어던져야 할 시점이다.
사실 나의 슬럼프는 수배생활을 정리한 직후부터였다. 고민은 많아지고, 자신은 없어지고, 정신은 헤이해지고, 육체는 게을러져만 갔다. 관성화되어가는 나, 발전하지 못하는 나, 진보가 아닌 퇴보해가는 나를 발견한지 꽤 되었지만, 난 속수무책이었다. 뻔히 보이는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나를 감싸기 위한 핑계에 몰두했다. 그래도 현장에, 전선에 서있다는 것만으로 내 자신에게 관대했다. 방황과 투정의 시간은 그렇게 길어졌다.
벌거벗겨진 나.
"최근 나와 나의 삶, 나의 운동은 창조적 활기보다는 관성화 되어있고, 주체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이며, 헌신성과 절박성은 온데간데 없고, 활동가로서의 기본적 수양과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어느정도 생각과 고민들이 정리되니 눈앞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거벗겨진 나를 발견한다. 지금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것과 같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부끄럽고, 힘들고,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니, 시야가 넓어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뚤리는 것만 같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거벗겨져 있는 나를 인정하고 나니, 이제 잃을 것은 없어졌다. 애초에 난 가진 것이 없음에도, 무언가를 가진양, 사람들이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알게 될까 두려워 했다. 그리고 내면의 진보보다는 껍데기 뿐인 포장에 몰두했던 나다. 그래서다. 슬럼프가 너무나 두렵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러나 이제 난 잃을 것이 없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부터 시작하려 한다. 용기를 내고, 스스로 하루하루가 발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진보생활ver2.
항상 자신감에 넘치고, 고되지만 하루하루가 즐겁던 시절이 있다. 투박하고 가진 것 없었지만, 활력있고, 늘 열정적이었던 삶이 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금 용기를 내는 것, 틀릴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적극적 사고와 실천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기로 한 만큼,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줄 알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데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 슬럼프가 없다면 혁신과 비약도 없을 것이다. 이제 긴 터널을 힘겹게 걸어나온 만큼, 혁신과 비약을 위해 나로부터 다시 시작한다.